▲ 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주최 ‘장애인최고지도자포럼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 강연자로 나선 조서환마케팅그룹 조서환 대표.ⓒ에이블뉴스
23세,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나 장군을 꿈꾸던 육군 소위. 어릴적부터 얼굴이 너부적하고, 줄반장을 독차지 했던 나는 부모님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하지만 시련은 빨리 찾아왔다. 군 복무 중 머리 위에서 터진 수류탄 폭발사고였다. 그 즉시 오른 손은 잘라져나가고 등 쪽은 벌집이 됐다. 1초만 늦게 수류탄을 집었으면 내 몸은 그대로 공중분해 됐을 것이다.
간호장교는 머리에 파편이 너무 많이 박혀 얼마나 더 살지 모른다고 했다. 직업도, 오른손도 잃은 23세의 육군소위 출신 장애인. 나를 잡아준 건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그래, 너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목숨이 붙어있는한 일어서마. 너 하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
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주최 ‘장애인최고지도자포럼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 강연자로 나선 조서환마케팅그룹 조서환 대표는마케팅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오른손의수를 낀 조 대표는 애경에서 신입사원으로 시작해서 하나로 샴푸, 마리끌레르 화장품 등의 히트작을 만들었으며, 이후 KTF로 옮겨 3세대 휴대전화인 ‘쇼(Show)’ 등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마케팅의 전설이라 불리는 그를 든든하게 받쳐준 긍정의 힘은 바로 ‘아내’였다. 사고 후 여자친구에게 한 달 만에 산산 조각난 몸을 보여주는 것은 끔찍했던 건 당연할 터. 힘들게 그녀를 불러 가슴 속에 묻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나 아직도 사랑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 그는 결심한다. 그녀를 위해 살아야겠다. 손이 없으니 입으로 먹고 살아야겠다. 40살 이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돈으로부터, 육체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 결심한 것.
“링거를 낀 채 왼쪽으로 삐뚤빼뚤 열심히 글씨를 썼어요. 내 사랑하는 사람만 옆에 있으면 행복했고, 이처럼 다행스러운 것은 없었죠. 바로 결혼하자고 했지만 장인어른의 반대는 극심했어요.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른손 없는 놈은 안 된다 라면서요.”
‘내 딸 할래, 저놈 아내가 될래?’ 찬물 한 모금 떠놓고 결혼을 강행했던 조 대표와 아내. 조 대표의 삶의 목표는 아내였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취직을 해야 하지만 도통 의수를 낀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간 애경그룹 면접에서도 오른손이 의수란 사실을 알게 된 면접관들은 조용히 퇴장 통보를 내렸다. 역시 나였다. ‘나는 안 되는 구나’
“전철로 뛰어들까 했어요. 그러다가 아내가 생각났고 갑자기 정신이 들었죠. 뒤돌아서 애경으로 뛰어들어 경비와 비서를 뿌리치고 면접장에 다시 도착했어요. 꼭 드릴 말씀이 있다고 말이죠.”
▲ 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주최 ‘장애인최고지도자포럼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에이블뉴스
두 손을 모은 채 그가 뱉었다. “여러분, 나는 대한민국 국가유공잡니다. 나는 나쁜 짓 하다 오른손이 잘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군에 가서 국가유공자가 됐고 저는 제자신의 프라이드를 갖고 살아왔습니다. 여러분은 분명 10점 가점, 국가유공자 우대라고 썼습니다. 이게 우댑니까?”
당차게 맞섰다. 이를 지켜보던 한 여성 면접관이 "지금 한 말 영어로 옮겨보시오"라고 하더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의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음날, 전보로 받아본 합격통지서로 당당히 첫 직장에 들어갔다.
“제가 애경 입사에 성공하고 크게 깨달은 것이 있어요. 우리는 역경에 부딪히면 일단 포기하죠. 그런데 정말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포기하지 않아요. 포기하지 않고 들이대고 또 들이대고, 문이 열릴 때까지 들이대죠. 근성이 최곱니다. 같은 운명일지라도 태도가 다르면 성공합니다.”
애경에 입사한 그는 날개를 달았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하나로 샴푸’ ‘2080치약’을 브랜드화한 장본인이 된 것. 스카웃 1순위가 된 조 대표는 2001년 KTF마케팅전략실 상무로 자리를 옮겨, 6개월만에 넘버원을 만들었다.
“쇼를 하라 쇼!” 전 국민이 기억하는 KTF의 대표작 쇼(SHOW)는 그의 머릿속에서 탄생했다. 5조원이었던 매출은 5년 만에 8조5천억으로 뛰었다. 손 하나 없는 ‘의수부사장’이 탄생한 것이다.
“장애는 불편한 것뿐 성공과는 상관없습니다. 손이 없으니까 나는 무엇인가 할 수 없어. 이런 결론을 내놓으면 시도를 안 하죠. 시도를 안 하면 이뤄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안 된다 안 된다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된다 생각하고 기도하고 꿈을 키워나간다면 그게 그대로 됩니다. 생각하는 대로 이뤄집니다. 도전하세요.”